[지상강연] ‘말과 행동’으로 세상 곳곳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
기독교 대학은 복음으로 무장시키는 ‘교육’의 소명 가장 커
■ 기독교 대학의 사회적 책임 … 제5회 국제기독교대학 학술대회 주제강연
지난 2월 휘튼대학교 총장에서 은퇴한 듀안 리트핀 교수는 기독교 대학의 일차적 사명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며, 기독교 대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그 대학이 길러낸 학생들을 통하는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고유한 사명이 있다. 제5회 국제기독교대학 학술대회 주 강사로 초청된 리트핀 교수는 ‘말과 행동’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인재를 졸업시켜 세상 곳곳에 내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대학이 세상에 대해 가지는 사회적 의무는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는 그 의무들을 계속 이행해 나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가치가 있으며 우리가 마땅히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다.
기독교 대학은 그 자체 독특하고 분명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명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우리의 방향을 잃을 수 있다.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ies)이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공동체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짊어져야 하는 책임을 뜻한다.
이러한 책임들은 어떠한 것인가?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말과 행위”(words and deeds)(골 3:17) 라는 두 표제를 써서 이러한 책임들을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말과 행위의 균형을 이루어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아무 걱정 없이 우리는 매일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위안을 가져다 줄 수도 있으나 동시에 위험할 정도로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 행동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달리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절대로 복음을 아무 말 없이 전할 수 없다.
우리가 택한 성경에 나오는 복음의 어떠한 진술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의 메시지가 말없이 전해질 수 없다면 예수님의 메시지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도 또한 말없이 전해질 수 없다. 이와 같이 어떤 메시지라도 정교함은 말할 것도 없고 바울의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구두(口頭)기호체계가 필요하다.
나는 교회의 구두(口頭)증언의 중요성을 자세하게 강조해왔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서 말이 차지하는 부문이 교회가 비언어적 증언을 강조함으로 무색해 지는 위험에 처해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단코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신실한 선포를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 오긴 했지만, 교회가 가지는 복음에 대한 의무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비언어적 부문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복음을 “전하기”(preach) 위해서 복음을 말로 나타내야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또한 삶의 구체적인 수준에서, 즉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속에서 복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신들의 백성을 부르신다. 따라서 그리스도 교회의 사명은 우리의 말과 행위에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기독교 대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첫 번째로, 우리가 말해온 것처럼, 기독교 대학은 교회가 아니다. 기독교 대학은 전형적으로 교회의 일원들로 구성되어 있고 교회를 확장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기독교 대학의 소명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소명보다 훨씬 더 집약적이다. 기독교 대학은 학문을 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교회의 소명이 또한 기독교 대학의 소명이 된다는 것을 결코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기독교 대학은 교회가 아닐뿐더러 구호단체나 사회봉사단체, 또는 선교단체도 아니다. 기독교 대학의 일차적인 소명은 복음전도에 종사하거나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거나, 병든 자를 치료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거나, 교회를 세우거나, 자연재해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대학의 주된 임무는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대학이 설립된 이유이고, 이것이 교회가 (그리고 세상이) 기독교 대학을 필요로 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기독교 대학에 속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기독교 대학의 주요한 소명이다.
세 번째로, 기독교 대학이 세상에 영향을 주는 일차적인 방법은 졸업생들을 통해서이다. 기독교 대학이 사회에 다른 가치 있는 유익들을 준다 하더라도 이러한 유익들은 기독교 대학의 중심 임무인 학생들의 교육을 온전히 이룬 결과에 따른 부산물들이다.
네 번째로, 기독교 대학이 교회보다 더 집약적인 사명을 지고 있지만 학생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교회 구성원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학생들은 세상에서 교회가 가지는 보다 폭 넓은 말과 행동을 통한 소명을 위해 일평생 하나님을 섬기기로 마음먹고 자신을 준비시키기 위해 기독교 대학에 온다. 이러한 학생들은 “목회” 형태를 띤 일을 준비하거나 의학, 사업, 법, 정치, 사회사업이나 학술부문과 같은 분야에서 말과 행동으로 소명을 감당하려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대학의 교육적 과제에는 교회의 보다 포괄적인 소명의 모든 영역을 위해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일이 포함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결코 우리의 주된 일차적 소명을 져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교회로서 생각하거나 어떤 다른 형태의 사회봉사 기관으로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혼동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방법은 우리의 교육적 소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소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왕국을 위해 세상에 나아가 사회 모든 방면에서 말과 행위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점점 급증하는 졸업생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들 졸업생들은 각자 자신의 소명에 따라 가능한 모든 곳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정의를 위해 일할 것이다. 그들은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것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것이다. 그들은 소외된 사람들을 도울 것이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것이다. 그들은 공동체와 국가의 지도자들이 되어 힘 있는 자리에서 빼어나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신실한 일꾼이 될 것이고 사랑스런 이웃이 되고 좋은 남편과 아내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주님께서 보내신 어느 곳에서나 빛과 소금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완수하도록 사랑을 잘 준비시키는 것이 주요한 일차적 “기독교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덤으로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