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게 할례를 행하다
권혁승교수<서울신대 구약학>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처음으로 진을 쳤던 곳은 길갈이다(수 4:19). 길갈은 ‘굴러가다’라는 의미로서 애굽의 수치가 떠나갔음을 보여준다(수 5:9).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자신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마지막 과정이 있었던 곳이 길갈이다. 길갈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중 첫번째는 할례를 행한 일이다(수 5:2-9).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다(수 5:2). 애굽을 떠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할례를 행했다(출 12:43-49).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에서 ‘다시’ 행한 할례는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을 위한 것이었다.
할례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 자손의 번성과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그 언약을 후손 대대로 지킬 것과 그 언약의 표징인 할례를 명령하셨다(창 17:1-14). 그 이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성장하였고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태어났다. 자손이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첫째 약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은 두번째 약속인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것은 언약의 두 약속이 모두 이루어지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 중대한 일을 앞두고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길갈에서의 할례는 기본적 의미 이상이 있었다. 그것은 길갈에서의 할례가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행했던 할례와 대응적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이 행한 첫 할례가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수용하며 그 믿음을 굳게 지키겠다는 신앙고백이라면, 길갈에서의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최종적 성취를 위한 마지막 조치였다. 약속을 믿음으로 수용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그 일을 구체적으로 이루어나가겠다는 적극적 참여가 포함된 결단이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할례가 우선적으로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세는 출애굽을 위한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런 모세에게 남아있었던 문제는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점을 엄하게 추궁하신 적이 있다(출 5:24-26).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애굽의 수치’를 떠나게 하셨다(수 5:9). 여기에서 ‘수치’는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의 낮은 신분을 의미한다.
길갈에서 할례를 행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그 신분이 격상된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언약의 성취를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