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효 운동’에 앞장선 30년
2001-12-23
‘이 학교를 전국에서 최고의 효 학교로 만들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생긴 그는 더욱 효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현재 영등포중학교에서 김 장로가 벌이고 있는 실천운동은 반복교육을 통한 생활 속의 실천을 목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학교 교문에는 효에 관한 명언명시가 쓰인 커다란 아크릴판을 매일 번갈아 걸고 이를 소리내어 읽힌 후 등교를 시킨다. ‘어버이 크신 은혜 바다에 비길 건가. 산보다 높으시니 어떻게 갚사오리. 자식의 갖은 고생 대신키 소원이요. 아들이 괴로우면 부모 맘 편치 않네’. ‘악한 마음이 생기거든 어머니를 생각하고 타락의 위기에 부딪히거든 어머니를 염(念)하라’ 등 20여 개의 효에 대한 명시명언들이다.
또 시를 읽은 학생들에게는 ‘저는 효자가 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꾸벅 인사를 하게 하고 ‘부모에게 편지쓰기’, ‘효도특강’, ‘효도 코팅지 나눠주기’ 등도 병행해 나갔다. 아예 집에 코팅기계를 설치, 그동안 나눠준 ‘효코팅지’만도 3만5천여 장이 넘어섰다. 더불어 그는 ‘대단한 청소년 봉사모임’의 첫글자를 딴 ‘대청봉’을 만들어 비가오나 눈이오나 매일 9명의 대원과 함께 교문을 쓸고 물을 뿌리는 등 청소를 해왔다. “때로는 아침에 청소를 하다 보면 구토한 오물이 있을 때도 많지만 장차 민족의 지도자가 될 학생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기쁜마음으로 치운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30여 년 간 이어지고 있는 효사상실천운동운동의 길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0여 년 전 구정중학교에서 위기가 닥쳤다. 압구정에 위치한 이 학교는 비교적 부유층 자녀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거부반응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심지어 학부모들에게는 ‘벼락맞아 죽어라’, ‘효밖에 모르는 사람’, ‘효로 시작해 효로 죽을 사람’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과 모욕들까지…. 김 장로는 “솔직히 힘이 빠져 더 이상 효운동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한 천사(?)를 통해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그 날도 그는 교무실 책상에 앉아 이 사역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욥기 8:7이 새겨진 소나무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힘내세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교무실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당시 그 학생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였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다시 힘을 얻은 그는 이전보다 더욱 당당하고 열심히 사역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수차례 교감 및 교장선생님이 될 기회가 있었으나 학생들을 직접 현장에서 가르치고 싶어 좋은 기회들을 모두 포기했다.
이로 인해 김 장로는 포기할 때 주어지는 승리의 삶을 톡톡히 누려 삼성복지재단의 효행상 특별상이라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늘 미안해하는 한사람이 있다. 바로 그의 아내! “쉬는 날에도 군부대 및 사회 여러 단체 강의 때문에 집을 비워야 하기에 아내에게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면서 “하지만 아내의 보이지 않는 기도와 후원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제 김동은 장로가 강단을 등져야 할 시간도 2년 남짓. 김 장로는 이 ‘효사상실천운동’을 ‘인생의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힘 닿는 데까지 기도와 열정을 갖고 해 나갈 계획이다. 정년퇴임하기 전까지 그의 목표는 학교 뿐만 아니라 군부대 1백 곳을 방문 효 교육을 하는 것. 아직 달려갈 길이 멀다.
오늘도 김 장로는 어김없이 한 손에는 성경을 또 다른 손에는 명시명언 아크릴판을 들고 학교 교문을 향한다. 이승국기자(sklee@uc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