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걸 퍽 힘들어 한다. 문화적인 요인도 있지만 읽고 외우고, 듣고 받아적는 ‘말하지 않는’ 입시 중심 교육이 더 큰 원인인 것 같다. 그러다가 대학에 진학해 토의와 발표를 하게 되는데 이때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2000년대 초에 필자가 ‘자신있게 말하기’라는 수업을 개발하여 운영해오고 있다.
한번은 키가 작은 여학생이 수강 신청을 해왔다. 첫 시간에 잠시 면담을 했다. 작은 키 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기가 꺼려지고 매사에 소극적이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학기마다 그런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발표를 하다가 울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말하기 기술보다 자신감 회복에 주력했고, 그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마지막 발표 날, 그는 A4용지를 한 장 들고 나왔다. 거기엔 ‘153’이라는 글자가 크게 씌어 있었다. “제 키는 153cm입니다. 그런데 제 키는 제가 결정한 게 아니라 타고난 것입니다. 제 키가 작은 건 제 책임이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 다른 학생과 키 비교를 하지 않고, 153cm로 당당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중요한 건 우리 마음의 키가 아닐까요?” 한 학기에 이런 학생 한 명만 길러내도 큰 보람이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가치관, 성격, 인식, 감정이라는 내면의 틀이 있다. 그 틀에 따라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규정한다. 문제는 그 틀이 정확한가다. 자칫 왜곡된 틀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한다면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린 손주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이 돌부리 때문에 우리 손주가 넘어졌네!”라며 할머니가 돌부리를 탓한다. 돌부리는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인데. 할머니의 이런 왜곡된 인식이 손주에게 전염되면 그는 쉽게 남을 탓하며 살 것이다.
나에게 해당되는 왜곡된 인식은?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인식의 오류들을 정리해봤다. 내게 해당되는 건 없는지 점검해보면 좋겠다.
△확대와 축소:잘못은 확대하고 성공은 축소한다. “25문제 중 4개나 틀렸네”
△긍정적인 것의 평가절하:성공이나 찬사에 대해 그 가치를 깎아버린다. “어쩌다 한번 잘 한 걸 가지고, 뭘…”
△파멸적 사고:가장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오늘 발표 때 틀림없이 망할 거야”
△개인화:다른 사람이 관련된 부정적인 사건에 대한 비난을 스스로 자신이 받아들인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 갔어야 하는데… 다 내 책임이야”
△과잉 책임:자신의 삶에서 실패한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책임을 지려고 한다. “그 사업에 손댄 건 내 인생 최악의 실수였어. 그 바람에 까먹은 돈이 얼마인지…”
△자기 중심적 사고:자기 평가적인 사고로 세상이 나와 내 문제를 지나치게 살펴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키가 작으니 사람들이 날 우습게 여길 거야”
△과잉 일반화:나쁜 사건이 계속 일어날 것으로 추측한다(머피의 법칙) “내게는 항상 그런 일이 일어나!”
△선택적 추상화:부분만을 선택하고 근거해 전체를 생각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감정적 논리:자신의 감정에 근거해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나 죽겠는데 왜 늦는 거야?” △비약적인 결론:상대방이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는 것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날 자꾸 쳐다보는 걸 보니 날 좋아하는가봐”
△낙인 찍기(꼬리표 붙이기):제한된 지식에 근거하여 사람을 분류한다. “기도를 유창하게 하는 걸 보니 믿음이 좋은가봐!”
△이분법적 사고:모든 걸 이것 아니면 저것, 흑과 백으로 나눠 생각한다. “세상은 지옥, 교회는 천국!”
△과잉 일반화:한 번 일어난 부정적인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임의로 결론짓는다. “우산을 차에 놓고 내리다니 오늘 일진이 안 좋군!”
△성급히 결론짓기: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해보고 그렇다고 확신한다. “내 전화를 안 받는 걸 보니 나를 무시하는 게 분명해”
△장점 무시하기:자신이 잘 한 점을 평가절하한다. “이번에 좋은 성적이 나온 건 운이 좋아서야” △당위진술:반드시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돼”
△파국적인 예상:최악을 예상하며 그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난 결국 면접을 망치고 망신을 당하게 될 거야”
이런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되면 진리는 물론이고, 일상의 감사와 불만도 왜곡할 수 있다. 왜곡된 렌즈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평유리’로 바라보자. 그래야 진리도, 감사거리도 제대로 보일 것이다. 성찰하며 기도하고, 사색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