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총회 설립 45주년. 45년이라는 짧은 역사에서 백석총회가 보여준 행보는 남들과 다르다. 내 것만 고집하는 자기 확신을 내려놓고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연합의 명령에 순종해왔다. 1978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복음총회로 시작된 백석총회는 합동진리, 진리연합, 합동정통, 백석, 대신, 백석대신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려왔다. 이렇게 많은 이름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연합을 이뤄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교회는 ‘백석’을 주목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같이 하는 개혁주의장로교단에 문을 열어놓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포용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백석의 역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축복이요, 은혜”라는 설립자 장종현 목사의 고백처럼 백석총회의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오늘의 백석총회가 있기까지 함께 한 역사의 산증인들을 통해 백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비전을 들어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연합 후 네 차례 총회장 역임
대외 연합활동으로 지경 넓혀
설립자 전폭적 지지 총회 큰힘
세계에 영향 미칠 정통신앙 유지
“장종현 목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 잊히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방배동 신학교를 우리나라 기독교 대학 중에서 가장 큰 대학으로 만들 것이며, 우리 총회도 한국교회에서 가장 뜻있고 훌륭한 대교단으로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지금 그 말씀은 현실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놀라운 섭리로 오늘의 백석을 있게 하셨습니다.”
한영교회 원로이자 3대 8대 9대, 16대까지 총 네 차례 총회장을 역임한 이상열 목사. 그는 학교와 총회의 발전을 오랜 세월 지켜본 역사의 산증인이다. 합동총회가 분열할 당시 한남노회 소속으로 비주류 측이 전권위원을 맡던 중 복음총회에 가입했고, 복음총회는 1980년 비주류 소속 노회와 교회를 받아들이면서 교단 명칭을 ‘합동진리총회’로 바꾸어 새롭게 출발했다. 복음총회 태동 이후 첫 연합이었다. 연합 과정에서 이상열 목사는 3대 총회장을 맡았다. 작은 총회였지만 신학교라는 든든한 뿌리가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무인가 신학교 정비령을 내렸고 군소교단들이 운영하던 신학교들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다. 신학교들의 존폐가 달린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한복음신학교는 서울시 인가를 받아 신학교육을 지속하고 있었다. 열악한 상황에 내몰린 여러 군소교단이 방배동의 문을 두드린 이유가 바로 신학교 때문이었다.
이상열 목사는 총회장이 된 후 교단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대외적인 활동에 매진했다. 개신교단협의회, 보수교단협의회에 가입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기독교지도자협의회에 잇달아 가입하면서 총회의 이름을 알렸다.
“군소교단이기에 설움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주눅들지 않고 꿋꿋하게 활동했더니 오히려 회장단으로 추천을 받아 연합회 지도부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총무였던 서상기 목사님과 정말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상열 목사가 8회기 총회장으로 있을 때 부산영락교회와 방어진제일교회가 가입했다. 상징적인 두 교회가 합동정통에 가입하자 예장 통합에서 엄청난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총회는 두 교회를 보호했고 이후 외부 영입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훗날 광명교회와 10여 교회가 함께 들어오기도 했다.
설립자 장종현 목사는 총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3대 총회장으로 섬길 당시 총회 사무실을 학교 건물에 마련해주었고 총무와 사무직원의 급여도 장종현 목사가 지원했다. 학교는 나날이 발전을 거듭했고 이는 곧 총회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돌이켜 보면 장종현 목사는 학교와 총회를 우리나라에서 으뜸가게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금까지 성실히 지켜오고 있다.
“총회장을 마친 뒤에도 저는 총회와 장종현 목사님 사이에 디딤돌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 총회는 전적으로 장종현 목사님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원만하게 운영될 수 있었습니다. 총회장들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저를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저는 장 목사님을 뵙고 도움을 요청하곤 했지요.”
이상열 목사는 천안 봉명동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중학생이던 장종현 목사와 허광재 목사를 만났다. 그 인연으로 학교를 시작할 때부터 지켜보았고 발전 과정에 함께 할 수 있었다. 목회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는 학교 교수로 청빙해 목회대학원장과 법인 이사로 섬길 수 있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총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총회”라고 강조한 이상열 목사.
그는 교단의 연합을 지지하면서도 분열과 갈등이 없는 하나의 단일체가 되길 소망한다. 다툼이나 분열이 한국교회를 얼마나 많이 병들게 했는지 목도했기에 무수히 많은 교단 연합 후에도 백석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지켜나가는 총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이제는 우리 백석대 출신 목회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타 교단과 연합한 후에는 갈등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단일체의 총회로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어느 교단이든 교회든 발전 뒤에는 세속이 치고 들어오고 그로 인해 퇴색하기 쉽습니다. 아직 우리 교단만큼은 정통을 주장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퇴색하지 않는 총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도 총회를 위해 기도를 쉬지 않는 이상열 목사. 노 목사는 백석의 개혁주의생명신학과 정통신앙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며 복음의 역사를 이루는 원천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정리=이현주 기자
* 이 글은 백석총회 설립 45주년 기념문집 <이기는 자에게 주신 흰돌, 백석>에 실린 이상열 목사의 회고의 글을 인터뷰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