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가 있다. 우주의 탄생과 자연만물의 창조 이후에 여섯째 날에는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신다. 아담과 하와는 두 사람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그 둘은 원래는 하나였다. 그리고 두 사람으로 각각의 인격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역할이 구분되게 된다. 그러나 둘인 그 사람들은 하나의 연합체로서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치면서 산다. 우리는 부부의 속성이 여기서부터 전해지고 있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끌리게 되고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것은 프로이트는 인간의 내면에는 성욕이 있다고 하며, 그것이 인간의 본성으로서 작용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칼 융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성욕은 단순히 생물학적 성으로서, 성애적 욕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성애적 감정으로 느껴지는 것 안에는 신비한 융합에 대한 마음,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에까지 이르기를 바라는 인간의 내면 본성이 있음을 말하였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적 본능을 그저 자신의 성욕을 추구하고 해소하고자 하는 것만 목표로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대상이 누구든 상관이 없으며, 자신의 욕구만 추구하기 위해 파트너가 이용될 뿐이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는 상대방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감정에 끌려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자신의 감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 감정에 의해서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상대방을 보고 끌리게 되는 매력적인 부분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이 외모가 되든, 학벌이 되든, 권력이 되는, 경제적 능력이 되든, 그 사람은 상대방에게서 자신의 감정에 드는 사람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상대방과의 인격적 만남, 진정한 관계, 영적인 하나됨의 관계가 있다.
그때는 그 사람, 단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약속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두사람으로부터 태어나는 자녀가 생기게 되면, 그 자녀에게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을 기꺼이 하며 사랑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부부 관계에서 과연 얼마나 상대방을 사랑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부부가 자녀에 대한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부부의 친밀감과 사랑에 있어서 성애적인 감정에서 시작되는 단계에서 점점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 그대로 내어주고자 하는 사랑이 있다면, 거기에는 환희와 기쁨을 맛보게 되는데, 그것은 신비체험가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기쁨의 의미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 관계에서 발견하게 되는 영적인 의미까지 찾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한 순간일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은혜를 구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몸을 가진 인간이며, 동시에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좋겠다.
대한심리상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