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 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이사야 43장 말씀을 토대로 지어져 듣는 이에게 힘과 위로를 북돋아주는 이 곡은 오늘날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찬송 중 하나인 ‘나의 안에 거하라’다.
그러나 이 찬송에는 한때 절망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 의지했던 작사·작곡가 류수영 전도사(45세·서평택 새중앙교회)의 믿음이 숨어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로부터 13년 만에 2017년 2집 앨범 ‘위로’를 발매해 또 한 번 큰 은혜를 선사한 그는 최근에는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예배찬양 전도사’로서 귀한 사명을 이어가고 있다. 과연 “고난도 찬송으로 바꿔주신 하나님”이라는 류 전도사의 신앙고백에는 어떤 간증들이 빛나고 있을까.
기적 같은 ‘치유’의 역사
“어려서부터 교회는 열심히 나갔지만, 정작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건 20대 초반 무렵이었어요.” 모태신앙인인 류 전도사는 아침마다 어머니의 기도 소리에 눈을 뜰 만큼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에게 ‘피아노’가 각별함을 넘어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이유도 틈만 나면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찬양하는 분위기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류 전도사는 대학 진학 시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피아노를 전공으로 택했다.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만 같던 그에게 매서운 시련이 닥친 건 대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중 콩쿠르를 준비하면서다. 매일 왕복 4시간의 통학과 수업을 제외하고도 꼬박 8시간씩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던 류 전도사는 결국 근육 과다사용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손가락부터 팔, 어깨에 걸쳐 상반신 근육이 다 파열되고 제 기능을 잃으면서 피아노를 그만둬야 함은 물론 혼자서는 수저도 못 들 정도로 일상생활이 힘든 심각한 상태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에서 류 전도사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도’뿐이었다. “밤마다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다 지쳐 잠들기 일쑤였는데 하루는 ‘나의 고통 중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음성이 맘속에서 들려왔어요. 그제야 ‘내 삶의 모든 것이었던 피아노를 내려놓겠습니다. 주님 한 분이면 만족해요. 대신 제가 앞으로는 무엇으로 영광 돌리길 원하세요?’라는 고백이 나왔죠. 그때 받은 새로운 비전이 ‘찬양사역자’입니다.”
이후 하나님은 류 전도사에게 기적을 행하셨다. 먼저는 설상가상으로 급성후두염에 걸려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그를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메인 찬양 팀 ‘영산싱어즈’로 부르셨다. 그리고 의사들도 치료하지 못한 병들을 고치셨다. “영산싱어즈 수습기간 마지막 날 찬양을 하는데 뜨거운 불덩어리 하나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통과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뒤 피아노를 치는데 손이 안 아프고 목소리가 터져 나왔죠. 찬양사역자로서 저부터가 온전한 ‘치유’를 체험한 겁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신 주님
자신의 꿈이 아닌, 주님의 뜻에 순종해 살기로 결단한 류 전도사를 하나님은 더욱 강한 불로 연단하셨다. 그가 영산싱어즈에서 한창 사역하던 즈음 IMF가 발생하면서 아버지의 사업은 실패했고 가계는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랐다. 하루아침에 집안 곳곳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고 빚쟁이들의 독촉이 이어졌다. 그토록 신실했던 어머니는 끝내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다.
마침, 성회 참석차 기도원에 있던 류 전도사는 전화로 이 같은 비보를 듣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이내 ‘생명은 오직 주께 달려있다’ 그리고 ‘사명자는 사명이 다할 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뇌리에 스쳤다. 결국 류 전도사는 기도로 뜻을 정하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대신 기도원에서 3일 밤낮으로 하나님께 무릎 꿇고 눈물로 매달렸다. 당장 내려오라는 가족들의 성화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영산싱어즈 팀원들과 함께 기도에만 전념했다.
며칠 뒤 어머니는 의식을 회복했다. 그러나 예전의 온화하고 인자한 어머니는 온데 간 데 없었다. 눈빛이 180도 달라진 채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던 것. 어머니는 온종일 어두컴컴한 지하방에서만 갇혀 지내면서 걸신들린 듯 음식을 먹어치웠다. 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힘은 장사여서 중보기도를 해주러 온 사람들도 내쫓았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는 아버지가 자살기도를 했다. 다행히 극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연약해진 어머니와 아버지를 류 전도사 혼자,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찼다.
워낙 부지불식간 일어난 일들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던 류 전도사는 이 상황을 ‘영적전쟁’이라 여기고 영혼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기도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자고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머니의 귀에 쉴 틈 없이 보혈찬송을 불러줬다. 그렇게 한 달가량 지났을까. 헌신적인 노력에도 아무런 변화를 겪지 못한 류 전도사는 처음으로 ‘실패했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그때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고 나갔는데 왠일로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됐고 눈부신 광채가 났죠. 순간 ‘주님이 드디어 우리 가정에 승리를 주셨구나!’를 확신하고 그 자리에서 어머니와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비록 우리 가정이 세상적으로는 좋은 것을 다 잃었지만 영적으로는 구원의 기적을 맛봤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류 전도사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주셨다. “그동안 힘든 날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 그래서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문득 주님이 이사야 말씀을 주셔서 성경책을 펴고 43장을 읽어 내려갔죠. 그리고 1분도 안 되는 짧은 찰나에 가사와 곡조가 전부 떠올랐어요. 이미 알고 있는 노래를 재생하는 느낌이랄까요. ‘나의 안에 거하라’란 찬송은 그렇게 탄생했어요. 주님이 ”네 환란이 기쁨으로 변하고 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이라면서 주신 곡이죠.
다음세대를 향한 새로운 소명
욥이 시험을 통과하고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처럼 오랜 터널을 지난 류 전도사에게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예비됐다. 우선, 나의 안에 거하라 곡이 포함된 1집은 절판이 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이를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류 전도사는 “바란 적은 없었지만 힘겨웠던 시절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주님의 보상이자 앞으로 과거 자신처럼 아파하는 영혼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라는 소명을 되새기게 하는 곡”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에도 평안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현재 믿음을 회복해 안수집사가 됐고, 영육의 강건함을 되찾은 어머니는 2003년 소천할 때까지 다섯 곳의 교회를 개척하며 끝까지 전도의 사명을 다했다. 류 전도사는 특히 집안의 1대 신앙인으로서 어머니가 뿌린 씨앗 덕분에 삼남매와 이모까지 주님을 영접했다면서 2017년에는 직접 기획·제작·프로듀싱한 2집 ‘위로’를 발표하고 ‘영원한 천국’이란 곡을 어머니께 헌정곡으로 바치기도 했다.
이처럼 싱어송라이터이자 복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류 전도사. 지금은 서평택 새중앙교회에서 예배찬양 전도사로 사역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또한 벌써 10년째라는 그의 역할은 ‘예배 및 찬양 디렉팅’과 평신도의 기능화를 위한 ‘양육’이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 다음세대 예배인도자, 찬양사역자 양성을 위해 청년들에게 악기연주와 보컬은 물론이고 예배·찬양 인도법을 전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류 전도사는 복음을 말씀으로 더욱 힘 있게 전하고자 2016년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목회학을 전공하고 올해 8월 졸업했다. “기존의 좋은 설교들로 머리가 한껏 커져있는 아이들을 양육하려면 먼저 제 자신부터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느꼈어요. 어중간한 실력으로 찬양 중간중간 넣는 멘트 몇 마디 혹은 간증으로는 청년들을 이끌 수 없죠. 진짜 제대로 된 말씀을 버무린 예배·찬양 인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늦깎이로 공부에 뛰어들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학교가 ‘피난처’였다는 류 전도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전해 지경을 더 넓혀가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백석에서 만난 동기들도 과거 수많은 역경 속에서 인내를 길러온 사역자들이다보니 눈빛만 봐도 서로 위로가 됐죠. 동시에 생명력을 지닌 교수님들을 보면서 새 힘을 얻었어요. 이에 앞으로는 사역과 성품의 지경을 넓혀 ‘진리’되신 하나님을 잘 전파하고 싶습니다.”